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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 명 비전 등록날짜 2010-08-06 조회수 11342
    제 목   소리없는 소리



    소리없는 소리
    = 봉미산 신륵사 석종(鳳尾山 神勒寺 石鐘) =

    하지(夏至)날 여러 고명하신 역학계 선생님들을 모시고 신륵사(神勒寺)로 출행하여 그 앞의 조포(潮浦)나루에서 야유회(野遊會)를 하였다.

    아침에 동대문운동장 뒤편에 모여 관광버스 2대로 출발하였는데, 가는 도중에 이천 호법면 안평(安平: 안고니, 웃들)에 잠시 들려 봉천동 영은당 김진철선생이 조성해놓은 그분의 선친묘소를 관찰하였다. 아늑한 분위기의 좌향과 앞으로 멀리 내다보이는 경관이 수려하였고, 주변을 손수 정리하여 지극정성으로 모시면서, '왜 옛날에 삼년 시묘(侍墓)를 한다고 했는지, 그 의미를 실감하였다'는 말에 나같은 불효자는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다음에 들른 곳은 민족의 위대한 성군(聖君)이신 세종대왕(世宗大王)을 모신 영릉(英陵)이다. 행정구역으로는 경기도 여주군 능서면 왕대리 산83-1 이다. 너른 터전에 높이 자리잡은 봉분은 세종대왕과 소헌왕후(昭憲王后)를 함께 모신 합장능이다. 처음에 헌능(獻陵) 서쪽에 있었는데 예종(睿宗) 원년(1469)에 이곳 여주로 이장하였다고 한다. 북성산(北城山: 일명 꾀꼬리봉) 줄기를 타고 내려온 형상이 소국(小局)으로는 목단반개형(牧丹半開形)이요, 대국(大局)으로는 회룡안조형(回龍顔祖形)이라 하는데, 모란꽃이 반쯤 피어난 형상에 할아버지산인 주산(主山)을 돌아보는 형국이라는 것이다. 산의 국세(局勢)와 능조성할 때의 실화, 그리고 이에 관련된 연혁을 들었다. 원래 태종(太宗)때에 좌상(左相)을 지낸 이인손(李仁孫)의 묘가 있던 곳인데, 왕능의 자리로 양보를 받았다고 한다. 이로써 여흥(麗興)이 부(府)에서 주(州)로 승격되어 여주(麗州)가 되고, 인물과 물산의 번화함이 비로소 이루어졌다고 한다. 능(陵) 초입(初入)에는 세종때에 발명한 각종 천문기구와 천상열차분야지도(天象列次分野地圖)의 모사품이 설치 전시되어 있어서 한동안 그것들을 살펴 보느라고 시간가는 줄을 몰랐다. 해시계를 보니 절기(節氣)는 정확하게 망종(芒種)을 지나 하지(夏至)를 가르키고 있어서 감탄을 금치 못하였다.

    다시 차에 올라 좀더 동쪽으로 나아가 다리를 건느니 신륵사(神勒寺)로 가는 길이다. 조포(潮浦)나루가 있던 곳이 유원지가 되어 시원한 강바람을 맞으며 많은 사람들이 물놀이를 하고 있었다. 점심을 준비해 놓은 식당으로 들어가 더덕구이와 닭도리탕에 소주를 곁드렸다. 식사후 신륵사(神勒寺)에 참배하러 나섰다.

    대웅전(大雄殿)은 아미타불(阿彌陀佛)과 관음(觀音)세지(勢至)를 협시로 모신 극락보전(極樂寶殿)이다. 부처님은 목조(木造)좌상인데, 정상(頂上)의 육계(肉계[髮-友+吉])가 높이 두드러진 거룩한 모습이 한없이 자비로왔다. 향을 사루고 지극한 염불을 하면서 엎드려 절하고 또 하여도 마음에 부족함이 남았다. 신발을 신고 나오려는데, 오늘 상(喪)을 치룬 불자(佛子)가 망자(亡者)의 초상을 앞에 모시고 식솔들을 뒤따르게 하여 법당안으로 들어오기에 얼른 비켜서서 마당으로 내려섰다.

    구층석탑(九層石塔)이 한가운데 있어서 합장하고 탑돌이를 하였다. 안내판에 적혀있기를, [多層石塔 보물 제225호 높이 3m] 영릉의 능침(陵寢)사찰로 지정되어 왕실의 원찰이 되었던 성종(成宗)3년(1472) 중창시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탑의 아랫부분 몸체에 비룡문(飛龍紋)과 구름무늬가 섬세하고 능숙하게 조각되어 있었으나 대리석이 마모가 심하여 많은 부분이 유실되었다.

    법당 앞에는 구룡루(九龍樓)인데, 법회와 의식을 할 수 있게 마련되었다. 통상적으로 일주문, 사천왕문을 거쳐 전위누각에 이르고 그곳을 통과해야 대웅전이 나오는 가람배치가 아니고, 절 오른쪽에서 진입하여 이 구룡루에 와서 왼쪽으로 돌아 대웅전을 향하도록 되어있어서 남한강을 바라볼 수 있는 정자각의 효과를 겸하고 있다. 절이 강에서 배로 접근할 때의 전경을 염두에 둔 배치이다.

    마당좌우로는 적묵당(寂默堂)과 심검당(尋劍堂)이 있다. 적묵은 선방(禪房)이요, 심검은 강당(講堂)이다. 현판은 이우(以愚) 김찬균(金瓚均)의 글씨라고 한다. 기울어선 싸립문을 제끼면 칠성각으로 통하는데, 나오면서 봉향각을 얼핏 훔쳐보았다. 예전에는 노전스님의 처소로 쓰였으나 지금은 요사(療舍)로 쓰이고 있다. 거기 현판은 추사(秋史)의 유명한 [竹爐止室](죽로지실), 신기(神氣)가 뿜어져 나오는 야릇한 글씨이다. 김정희(金正喜)는 스님들과의 교류가 많아서 이곳에서 차모임 또는 시모임을 했을 때 썼을 것임을 알겠다.

    서북편으로 너른 자리에 조사당(祖師堂)이 한가롭게 보인다. 지공(指空) 나옹(懶翁) 무학(無學) 삼대화상(三大和尙)의 영정(影幀)을 모셔놓은 곳이다. 가운데에 목조로 된 나옹스님의 독존(獨尊)이 안치되어 있는데 이곳에서 주석하고 여기서 입적하시며 널리 불법을 펴신 스님의 은덕을 기리고 있다. 스님의 법력이 고려말 불교를 개혁하고 중흥하는 중심에 계셨음을 알 수 있다. 향을 피워 거의 7백년의 세월을 뛰어넘어 한마디 가르침을 얻고자 엎드리니, 가슴이 쓰라리고 몽매함이 더 깊어져 눈물이 저절로 흐르는 것을 주체하지 못하였다.

    밖으로 나와 오른쪽숲길 돌계단을 한발짝 두발짝 오르면서, 나옹스님의 부도 석종(石鐘)의 은은한 소리를 듣는다. 신륵사에 보물이 무수히 많지만, 도량내에 가장 전망이 좋은 위치에 영험한 서기(瑞氣)를 발하며, 소리없는 소리를 울리는 이 보물 제228호 보제존자 석종(普濟尊者 石鐘)이야말로 심금을 울리는 신묘(神妙)함이 있다.

    聞鐘聲 煩惱斷 (문종성 번뇌단): 이 종소리 듣고 번뇌를 끊어라
    智慧長 菩提生 (지혜장 보리생): 지혜가 길어지면 깨우침이 생기리.
    離地獄 出三界 (리지옥 출삼계): 지옥을 벗어나 삼계를 뛰어넘어
    願成佛 度衆生 (원성불 도중생): 부처를 이뤄 중생제도하기 소원하네.

    종소리는 얕은 산록을 타고 흐르며 강변으로 내려가 출렁이는 물결에 실리우고 있었다. 그리고 강을 따라 한없이 서쪽으로 서쪽으로 가고 있었다. 극락정토(極樂淨土)의 세계로...

    동남쪽 강안(江岸)으로 내려오면, 우뚝 솟은 보물 제226호 다층전탑(多層塼塔)을 만난다. 고려시대 벽돌로 쌓은 전탑으로 유일하게 남은 것이다. 현재 7층으로 되어있는데, 건립연대는 알 수 없으나 조선 영조(英祖) 2년(1726)에 중수한 사실이 있다고 한다. 사찰의 중심구역 밖으로 나와 험한 바위위에 세워진 것은 여말(麗末) 선초(鮮初)의 자생 풍수(風水)의 영향으로 비보(秘補) 사상을 보여준 것이라 한다. 그 앞으로 나옹선사를 다비했던 자리에 작은 탑을 세워 기념했고, 강물로 한발 더 나아가면 강월헌(江月軒)이 강바람을 부르고 있다. 나옹선사의 당호를 그 정자에 현액하였다.

    시원한 강바람아, 불어라,
    이 답답한 마음을 휩쓸고 가버리게..
    시원한 강바람아, 불어라,
    이 무더운 가슴을 서늘히 식혀주게..
    시원한 강바람아 더 불어라,
    이 혼탁한 세상사를 정당히 발루어주게.....

    목은(牧隱) 이색(李穡)이 태조(太祖)의 부름을 거절하고 이 신륵사에서 1396년에 죽었으며, 그의 아버지 가정(稼亭) 이곡(李穀)은 이 절에 나옹선사의 비문을 지어 세웠고 1380년부터 3년에 걸쳐 대장경을 완성하여 2층 장경각에 봉안했다는 기록이 있다 한다. 이절은 극락보전 대들보에 나옹선사의 글씨로 알려진 [千秋萬歲](천추만세)의 현판처럼 앞으로도 만세를 누릴 것이다.

    동쪽으로 우두산(牛頭山)과 봉미산(鳳尾山)이 아우러져 내려왔고, 남한강은 충주의 월악(月岳)으로부터 백리(百里)를 흘러서 이 여주에 이르니 여강(麗江)의 맑고 푸른 경치는 필설(筆舌)로 다 하지 못한다고 했다. 이곡(李穀)이 이곳 풍광을 시로 읊기를,

    如將此景入毫端(여장차경입호단)
    文要蘇黑字要顔(문요소흑자요안)
    政爲居民愁賦役(정위거민수부역)
    寧容過客賞江山(녕용과객상강산)
    白波靑峰閭閻裏(백파청봉여염리)
    赤岸銀河伯仲間(적안은하백중간)
    一宿樓中猶未足(일숙루중유미족)
    扁舟他日醉長閑(편주타일취장한)

    누가 앞으로 이 경치를 붓 끝에 들이려 한다면
    문장은 소동파(蘇東坡)나 황산곡(黃山谷)과 같고
    글씨는 안진경(顔眞卿)과 같아야만 한다네.
    다스림에 놓인 백성들은 부역을 걱정하고 있는데
    지나는 길손의 강산 구경을 한가히 용납할 수 있겠나
    흰 물결 푸른 봉우리는 여염속에 있고
    적벽강의 붉은 언덕, 은하의 물과 비슷해서 백중사이로세.
    하룻밤을 누각속에서 자도 오히려 부족하니
    다른날 작은배 타고 길고 여유롭게 취하여보세.

    라고 노래했으니 이 여강(麗江)의 아름다움을 절절이 느끼게 해준다.

    나오는 길가에 야생화의 화단이 있는데, 갖가지 향초와 약초들이 늘어서 있었고, 그 너머에 갈대숲이 우거져 바람에 속삭이고 있었다.

    2003. 6. 22. 하지(夏至) 비전

    음악: (신쾌동류 가야금 산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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